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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저희 파는 없네요..2004-11-29 13:42:49  
  전재모  (69.♡.155.211)조회 : 4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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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할때. 보니까. 6개 파밖에 없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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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평강백파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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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없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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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전씨 53세손인 전재모 입니다.

회원님은 정선 전씨에서 분적한 평강 전씨(平康全氏) 인것 같습니다.
전씨중앙종친회 싸이트 (http://www.jeonc.org)를 방문해보세요.

문헌에 190여 개의 본이 전하나, 전씨는 모두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한 혈통이라는 것이 통념이다. 도시조(都始祖)로 받들어지는 전섭(全)은 백제 온조왕 때 공을 세우고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오늘날 대표적인 본관인 정선(旌善)·천안(天安)·옥천(沃川)·용궁(龍宮)·나주(羅州:羅城)·경주(慶州)·옥산(玉山:慶山)·성산(星山)·죽산(竹山)·전주(全州:完山)·감천(甘泉:安東)·평강(平康)·함창(咸昌)·팔거(八)·황간(黃磵)·부여(扶餘) 등이 이에 속한다.

평강 전씨(平康全氏)
 평강(平康)은 강원도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부양현(斧攘縣) 또는 사내현(斯內縣)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 때 광평(廣平)으로 고쳐서 부평군(富平郡)에 속하게
하였으며 고려 1018년(현종 9)에 평강으로 개칭하고 동주(東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명조 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김화(金化) 감무가 겸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에 다시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시켰다.
 평강 전씨의 관조는 도시조 전 섭(全 攝)의 29세손인 전 빈(全 賓)이다.「전씨대동보(全氏大同譜)」에 의하면 빈(賓)은 고려 공민왕 때 사람으로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거쳐 숙천 군수(肅川郡守)를 지냈고 조선이 개국하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에 올랐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평강(平康)을 식읍(食邑)으로 하사 받고 평강백(平康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적하여 평강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빈(賓)의 아들 후백(厚白)이 세종 때 음보(蔭補)로 초계 군수(草溪郡守)에 올랐으며, 손자 수산(壽山)은 중종조에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한편 평강 전씨가 자랑하는 인물인 유형(有亨)은 임진왜란 때 조 헌(趙 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웠고, 선조 말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거쳐 광해군 때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亂軍)에 내응(內應)하리라는  무고(誣告)를 받아 처형되었으나, 뒤에 혐의가 벗겨져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고 의민공(義敏公)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아들 현(鉉)은 감역(監役)으로 학문이 깊었으며, 현(鉉)의 아들 기제(起濟)는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고, 후손 홍여(弘永)은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여 현령(縣令)을 지낸 광천(光天), 찬성(贊成)을 역임한 규건(奎建), 효행으로 정려(旌閭)가 세워진 상익(相益)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강 전씨는 남한에 총 700가구, 2,82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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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n, Sang-Kyung (217.♡.9.100) 05-02-16 00:44  
전씨중에 장원으로급제한 분이계셨다니 자랑스럽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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