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 전씨(甘泉 安東 全氏)
시조 전언(全彦)은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의 10대 공신중의 하나인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이다.
전언은 고려 충숙왕 때 밀직부사 판전농사사(判典農寺事)를 역임했다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감천(안동에 속한 현으로 현재의 예천)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감천으로 하였다.
[ 대표적 인물 ]
2세손인 전숭간(全宗幹)은 고려시대에 도순문출척사(都巡問黜陟使)를 지냈고,그의 아들인 전사안(全思安)은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냈으며 전온(全穩)은 개성소윤(開城少尹)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전처정(全處貞)은 별좌(別坐), 전세적(全世積)은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 전백옥(全伯玉)은 군수, 전련은 현감, 전순필(全舜弼)은 목사 전오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전신철(全愼喆)은 장례원판결사(掌隸院判決 전의혁(全義赫)은 부총관 전종우(全鐘佑)는 부호군(副護軍) 전대득(全大得)은 병조참판, 전태후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전씨세보(全氏世譜)》에 따르면 정선전씨(旌善全氏)의 도시조(都始祖, 가장높은, 처음)는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이며, 그는 백제(白濟) 개국공신으로 고구려 동명성왕(주몽, 朱蒙)의 세째 아들 온조(溫祚)가남천(南遷, 남쪽으로 옮겨가는) 시(時, 때)에 부여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白濟)를 개국할 때 배종(陪從, 같이 모시면서 도운)한 오간(烏干), 마려(馬藜),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우(紇于), 한세기(韓世奇), 곽충(郭忠), 범창(笵昌), 조성(趙成) 등과 함께 백제(白濟) 개국에 공(功)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 10명의 공신)의 한사람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전란속에 전섭의 후손에 관한 기록은 7세에 걸쳐 소멸되었다.
신라통일 이후 8세손 전선이 신라 성덕왕 22년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국내에 소개한 인물로 신라때 벼슬이 추부시랑 (秋部侍郞)에 오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모든 전씨는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을 도시조(都始祖, 가장높은, 처음)로 하고 정선군(旌善君) 전선 (全渲)을 득관중시조 (得貫中始祖, 본관(本貫)을 처음 얻게된 (중)시조)로하고 있다.
모든 전씨는 정선을 대종(大宗, 종가, 직계)으로 하며, 전국 대동보(大同譜, 전국 통합 족보)를 전국통합으로 발행한다.
정선전씨(旌善全氏)는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을 시조(始祖)로 1대(一代) 18파(十八派)로 분파(分派)하였다.
전성(全姓)의 관향이 성산(星山), 옥천(沃川), 옥산(玉山), 용궁(龍宮), 완산(完山), 죽산(竹山) 등 십팔관향(十八貫鄕)으로 분적 (分籍)되었으나 이들 관향조(貫鄕祖)는 모두가 정선군(旌善君)의 후예이다.